2011년 4월 23일 토요일

[세모스코너] 통일은 통일부의 몫이 아니라 국세청의 일이다

386과 X세대 이하 세대에게는 통일은 머나먼 정글 기사입력 2012-11-27 10:57 | 최종수정 2012-11-27 19:46






 지금도 색깔론 이며 월북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존재 하는 것에 대해서 2011년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궁금하다.  세계적인 추세로  본다 면 더이상  사회주의나 민주주의
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의 대표주자였던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개방화 및
자본주의  못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세계유일의 공산간국라고 칭하고 있는 북한 역시 3대 세습으로 인해 더이상 공산주의라는 말은 의미없는 말이 되었다.  3대 세습을 하고도 공산주의를 외친다면 관속에서 마르크스가 뛰쳐 나올 판이다.

1953년 까지 혹은 1975년 까지 북한은 찬양 했다면 그건 대한민국 법에 저촉 된다.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이 사실에 관해서
 우리는 중,고등 학교 사회책만 살짝 더듬어 본다고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상식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상식에서 한발 짝만 물러나서 본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2차 대전은 일본의 패망으로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세계정복 야욕은 끝을 맺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새로운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된다. 그 당시 미국은 남한에 대해서 배제 상태였다. 일단 한국과 미국의 거리는 매우 먼거리였고
방위전략차원에서 대한민국 은 러시아 손아귀에 들어가더라도 일본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회복가능한 상태라고 판단
하고  방위노선에서 제외했다. 반면 러시아는 영토 확장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정치 정치상황을 보더라도 대한
민국은 이승만파, 상해임시연합파, 국내파 의 혼란속에 있었고 심지어 박헌영까지 속내를 들어내지 않은채 웅크리고 있었다.
이에 반면 북한은 러시아의 지원속에 김일성이 독보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사회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빈약해 예술, 문화에 대해서 보수적이고 수용하지 못하는 분위기
였다. 하지만 북한은 매우 개방적이고 모든 문화를 수용하겠다는 분위기 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53년까지 월북이나 북한을 칭송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75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법으로 문제
되었지만 그때가지 북한을 칭송 했다는건 문제가 아니라는건 역사적 사실이다. 분명 이 글을 읽는 2011년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까 말 한 것 처럼 한 발 뒤에서 생각해 보자 1975년 전 까지는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이
 북한 이었고 지금의 북한의 모습이 그 때 당시 대한민국 이었다.

자본주의 이론으로서 본다면 그때 당시 북한은 남한을 충분히 남침할 여력이 되었었고 남한은 북침할 전혀 준비가 안되었다.






 영화 쉬리가 흥행을 하고 당시 국정원장과 쉬리 배우들 간에 면담이 있었는데 그 당시 국정원장이 농담삼아 최민식씨에
신변보호를 해줄  의향이 있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영화 쉬리에서 최민식의  대사중에 " 북한인민들은 배고파 죽어 가는데
남한 사람들은 비만 때문에 고민  한다 그래서 북한이 싫다" 라는 말을 하는데  그 대사 때문에 북한에서 최민식을 테러
할 수 있다고 농담삼아 한 말이다.

영화 간첩리철진을 보면 더 정확히 그려져 있다. 특이한 간첩 리철진은 북한의 식량 문제 때문에 북의 지령을 받고 대한민국의
몰래 침투 한다. 하지만 침투과정에서 간첩 스럽지 못하게 택시 강도를 당하고 고난에 빠진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대한민국에 있는 고정 간첩 또한 더이상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적정선의 기반을 잡고 있는 고정간첩
의 경우 간첩이라고 자수를 할 경우  더 힘들어 질 수 있다는 판단아래 커밍아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
광화문 한 복판에서 "나는 간첩이다." 라고 소리 치면 국정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 으로 갈 것이다. 아니면 지나
가는 사람이 동전 한잎 던져 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금의 새터민 정책에서도 알 수 있다. 1980년대 북한주민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면 거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고 북한 주민도 아닌 대한민국에 사는 이방인이 되었다.

얼마전 이해를 못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현직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북한을 찬양했다.  대한민국에서 제법 괜찮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그에 관해서 판단 할 수 있는 정보도 있었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북한을 찬양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임수경씨가 중국을 통해 북한을 갔을 때 통이 될 거라고 믿었다. 임수경씨가 본건 사실이다. 하지만 부분적 사실이다. 북한에
간 임수경과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김만철씨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혹시라도 대한민국 정부나
 북한 정부가 나를 속이는 건  아닐까 ?  자기들이 배운 것과 너무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의 뉴스를 보면 어제는 북한과 싸우면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오늘 뉴스를 보면 북한은
상대가 안된다. 라는 이상한 식의 뉴스가 흘러 나온다.  물론 그 뉴스는 어떤 특정의 대변을 위해 강조성을 붙이다 보니
그렇게 한다는 건 이해 한다. 하지만 그 강조성이 일관성이 없고 적정성이 없다보니 애매 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천안함
사건 때 국방부는 애매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75년까지 북한을 찬양 했다면 불법이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2011년 북한을 찬양한다면 불법이면서 상식 밖의 모습이다.
그럼 2011년을 살아가는 30대 ~40대의 통일에 대한 의미는 어떨까 ? 과연 지난 세대의 통일의 의미처럼  같은 통일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아니다.

북한과 통일을 하는 것은 의미적으로는 찬성 할 것이다. 국토문제 라든지 어떤 의미 상으로는 받아 드릴지 모르나 현실로서는
매우 높은 벽이있다. 작년에 이명박대통령이 통일세 이야기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통일하지 말자" 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세금을 내는 충추 세력 이라고 불리는 30대~40대의 경우 세금이 많이 올라가되면 살기 힘들어 지는데 무슨
통일 이냐 라는 싸늘한 반응들이 많았다."

그 차이가 대한민국에서  통일을 막는 큰 요인이다. 50대 이상의 세대에서는 이념적 평화통일 이나 북진통일을 말하지만
지금의 30대~40대  세대들에게는 그런 의미가 불필요 하다. 이념적평화 통일이나 북진통일이나 지금 이시대의 중추 세력
에게는  현실과 동 떨어진 개념처럼 보여진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386 이후 X세대 혹은 70년대 이후 태생 들에게는  통일은 통일부의 몫이 아니라 국세청이 결정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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